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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셨다/니혼슈 탐구생활

배와 포도, 투명한 소다 향을 걸친 카모니시키 키스이센 시보리타테

일반 사케에서 보기 힘든 의류 라벨을 떡 하니 병에 붙여놓은 이 친구는 카모니시키라는 술이다.

모 이자카야의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본 뒤, 라벨 디자인이 예뻐서 “언젠가 마셔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 도쿄 여행 때 시음한 뒤, 맛있어서 구입하게 되었다.

도쿄 주판점에서 시음했던 카모니시키. 한 잔에 3000😉

브랜드 의류에나 달려있을 법한 택 라벨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데, 이런 택을 일본어로는 니후다(荷札酒: 꼬리표) 라고 부른다고.

그래서 카모니시키의 풀네임에는 항상 니후다자케(荷札酒: 꼬리표 술)라는 명칭이 붙어있다.
(이 술의 풀네임은 카모니시키 니후다자케 키스이센 시보리타테이다. 헥헥)

 

~ 오늘의 짤막 지식 + TM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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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니시키는 사케로 유명한 고장, 니가타 현의 사케이다. 니가타가 얼마나 유명하냐면 쿠보타, 핫카이산, 코시노칸바이 같은 국내 대형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케의 대부분이 니가타 술.


그럼 니가타 술은 다 맛있나? 하면 그것은 또 아닌 것이 술은 기호식품이니까.
특히 쉽게 구할 수 있는 대표적인 니가타 사케들은 유명세와 뛰어난 접근성에 비해 맛이 고전적인 편이다.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깔끔, 푸근해서 음식이랑은 잘 어울리는 맛인데 (일본어로는 탄레이 카라구치라고 함) 내 취향은 아니였다. 몇 개 마셔본 뒤, 니가타 = 맛없음 이라고 생각하고 한동안 멀리했는데 이번에 마신 카모니시키가 선입견을 와장창 깨주었다.

재밌게도 카모니시키 이후 맛있는 니가타 술들을 여럿 발견해서(마노츠루🥰!) 뭐든지 얕은 지식으로 속단하면 안 되겠구나, 새삼스러운 초딩 같은 생각도 했읍니다.

시음 전 라벨을 좀 살펴보면, 라벨 왼쪽은 시보리타테しぼりたて라고 적혀있다.

2022년 재배한 햅쌀로 만든 첫 술이라는 뜻. 계절한정, 제철, 이런 거에 눈 돌아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치트키 같은 단어이다.

라벨 오른쪽 위는 보면 노란 꽃과 함께 키스이센(黄水仙: 황수선)라고 적혀있다. 이게 적혀있는 이유는 조금 설명이 필요한데, 카모니시키 양조장에서 출시되는 사케는 양조장 자체 분류에 따라 이름과 그림이 붙는다.

키스이센(황수선): 저알코올, 마시기 쉬운
베니키쿄우(홍도라지): 실험적이고 개성적인 제품
겟쿄쿠(월백): 탄레이 카라구치 스타일

라고 한다.(양조장 홈페이지에도 잘 안 보여 주판점 사이트 뒤져가며 찾느라 힘들었다.)
가끔 어떤 라벨은 그림이 없고 쌀 이름만 떡 하고 나와있는 제품도 있는데, 이는 특별한 쌀을 이용해 만드는 한정판. ex) 특A급 야마다니시키, 아이야마 등.

카모니시키 요시카와 야마다니시키 특A지구산.

사진은 금군 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마실 수 있었던 카모니시키 요시카와 야마다니시키 특A지구산. 그림은 없고 어떤 등급의 쌀을 썼는지만 적혀있다.

이 친구는 대놓고 넘맛존맛이어서 디테일을 하나도 안 적어놨더라는😅ㅋㅋ

요냉장: 가열하지 않은 나마자케라서 반드시, 무조건 냉장고에 보관해야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시음 소감을 얘기해보면

잔에 따르니 향이 퐁퐁 솟아난다.

첫 향은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바로 썰어낸 배에서 맡을 수 있는 달큰하고 시원한 배 향 + 향긋한 소다 향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향이다.

한 모금 마셔보니
자글자글한 탄산을 머금은 투명하고 산뜻한 질감의 술이 입 안에 착 감겨 달콤한 향을 퍼트린 뒤, 언제 달콤했냐는 듯 입 안이 마르듯 사르륵 드라이해진다.

누가 술 아니라고 혼내기라도 할까봐 약간의 쌉싸래한 맛과 미세한 알코올감도 입 안에 살짝 남아 여운을 준다.

그냥 너무 맛있다 라고 써놓고 홀라당 비우고 싶은 걸 꾹 참고 오랫동안 음미하며 마셨다. 여러 번 향을 맡고 마시기를 반복하니 포도향도 느껴진다. 청포도는 아니고 껍질을 벗겨낸 거봉 같은 느낌. 소다 향과 섞여서 그런지 아이스크림에서 맡을 법한 가공된 포도향 같기도 했다. 꽃 향기도 섞여있고…

주질은 무척 라이트한 편. 경쾌하고 산뜻하게 쭉쭉 들어간다. 여름에 출시되면 더 대박일텐데 겨울에만 마실 수 있는 술이라니. 아 인생의 아이러니 같구나(뭐래)

0도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바로 마시는 거라, “온도 살짝만 올리면 향이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생각에 시도해봤는데 왠걸! 그냥 차갑게 마시는 쪽이 훨씬 맛있었다. 낮은 온도일 때 오히려 과실 향이 풍부하게 느껴졌다.

포도 향이 나니, 샤인머스캣을 곁들여볼까! 생각에 같이 먹어봤는데 샤인머스캣이 너무 달콤한 바람에 술 맛이 확 죽어버리더라. 감히 내 술을 죽여?

그치만 예쁘길래 한 방 더 찍어봤다.
이미지가 잘 어울리기도 하고.

포스팅 한답시고 카모니시키 공부 한참 했다.
근데 그럴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자주 볼테니까😋 도쿄 주판점 기준 만원 후반대였는데, 한국에서 이렇게 팔았으면 진짜 맨날 마셨을 거 같다.

한국에 들어온다면 - 나마자케니까 냉장 유통으로 들어와야하고… 어쩌고 저쩌고 어른의 사정 붙어 소매가 6,7만원 하지 않을까 싶다. 소매는 없고 업장에나 들어가겠지만ㅠ 도쿄 또 가서 쟁여오고 싶다.

디테일
양조장: 카모니시키
쌀: 오카야마산 오마치 80%
정미율: 50%
알코올: 13도

짤막평: 니가타 술 맛없다는 선입견 박살내준 프루티하고 드링커블한 술. 보이면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