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기 무섭게 사케 전문점들의 인스타에 가을 사케, 히야오로시 포스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을에 출시되는 사케는 일본어로 히야오로시ひやおろし 또는 아키아가리秋あがり 라고 부르는데 겨울에 양조를 마친 후 가을 초입까지 숙성하여 출고하는 술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사케들과 다르게 열처리를 1번만 해 나마자케처럼 잔잔한 미탄산이 살아있다. (시중의 일반적인 사케는 열처리를 2번 진행한다.)킨스즈메를 검색해서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분이라면 다 알고 있겠지만

히야오로시를 부르는 다른 말, 아키아가리는 직역하면 “가을의 수확”이라는 뜻이라는데... 제철음식 애호가로써, 제철 술을 안 마실 수 없지!🍂

오늘 찾은 술집은 연남동의 사케바 단단.
연남동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자카야 단단에서 낸 가게라고 한다. (이자카야 단단은 어렸을 때 종종 갔었는데, 사케바 단단은 이번이 첫 방문이었다.)
주로 예약제 오마카세로 운영되는데(1인 4만 5천원) 9시 이후에는 워크인 방문이 가능하다고 하여 체크해뒀는데 이제야 방문했다.
사케바 단단은 오늘이 첫 방문이었는데, 방문하게 된 계기는 1. 인스타로 확인한 니혼슈 라인업이 좋아서
2. 예약없이 워크인이 가능해서 였다.
(예약하는 거 너무 귀찮아😇 워크인이 최고야)

9시 되자마자 들어갔던지라, 막 손님들이 빠지고 오마카세 뒷정리하고 계신 것 같던 분위기.
워크인으로 왔다고 하니, 현재 메뉴 및 가게 시스템 정비 중이라 안주 메뉴는 따로 없으며, 인당 만원 씩 내면 사시미 등 안주류를 적당히 내주신다고 하셨다.
오늘의 목적은 오로지 술이었기에! 그렇다면 더 좋지, 의 마음으로 바에 앉았다.

바 바로 앞에는 소츄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는데 세키토바 블루, 쿨 민트, 야스다 등 평소 좋아하는 소츄와 궁금했던 소츄들이 가득해서 들어가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제대로 왔구나;)

가게 안쪽에 자리한 거대한 니혼슈 냉장고. 소츄 이상으로 종류가 다양하다. 마셔본 브랜드도 있고 아직 못 마셔본 브랜드도 잔뜩.
사진 상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맨 오른쪽에 지콘 준마이 다이긴죠도 있었다. 언젠가는 먹고 말리라!

가을 술을 보틀로 마시고자 단단히 각오(?)하고 왔지만 아무래도 처음 방문한 곳이다보니 분위기도 보고, 안주맛도 보고, 간도 예열할 겸, 잔술로 시작하기로 했다.
사진은 없지만 현재 잔술이 가능한 술이 4종류가 있다고 하시며 잇쇼빙(1.8L) 병을 꺼내 보여주셨다. 호우비덴 츠루기, 아카부, 호우카,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술 까지 해서 총 4병이 있었는데-
호우카는 예전에 마셔봤고 호우비덴 츠루기가 궁금했기에 호우비덴 한 잔, 믿고 마시는 아카부 한 잔. 이렇게 주문했다. (가격은 잔당 1만원 초반대)

흔한 마스 잔이 아니어서 기분이 더 좋아졌던, 아름다운 그라스! (기분 +3)

호오비덴은 이름은 정말 많이 들어봤는데 막상 마시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 모금 마시니 상큼과 시큼의 중간 쯤에 있는 산미와 달달한 맛, 곡물의 풍미가 슬쩍 느껴지고 파인애플스러운 향이 차분하게 올라왔다.
호오비덴 츠루기를 하우스 사케로 내놓는 곳이 꽤 있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은 맛이랄까. 쌀로 만든 술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 같은, 맛좋은 술이었다.

내가 요즘 하도 아카부 아카부 거려서 진희가 주문한, 아카부 준마이. 이 친구는 사케 많이 안 마셔본 사람은 그냥 화이트 와인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맛이다.
라이트한 바디감과 팡팡 터지는 산뜻하고 화사한 과일향이 매력적이다. 라벨만 예뻤더라면 훨씬 인기 많았을텐데 라고 맨날 생각한다.


술을 홀짝이고 있을 때 사장님께서 내주신 모듬 사시미. 참치 아카미, 도미, 단새우. 딱 안주로 적당한 양이 좋았고 숙성도도 만족스러웠다.

새삼스럽지만 역시 술을 두 가지 이상 비교하며 마셔봐야 한다. 아카부와 호오비덴 츠루기를 비교해보니, 나도 진희도 아카부 쪽이 더 취향이었다. 맑고 화사한 파인애플 와인 같은😘
다만 집에서 여러 음식과 어울리는 술을 고르라고 한다면 호오비덴 츠루기를 고를 것 같았다. 이것저것 어떤 음식과 먹어도 잘 맞을 것 같은 쪽은 츠루기 쪽!


각자 한 잔씩 잔을 비우고 - 자 그럼 이제 어떤 가을 술을 마실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장님께서 무조건 이걸 마셔야한다며 킨스즈메 준마이 긴죠 아키아가리를 추천해주셨다.
킨스즈메는 단골 이자카야 아소토 사장님께서 “가성비 지콘”이라고 불린다며 강추하셨던 술이었기에- 언젠가 꼭 마셔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가을 술도 다 떨어진 상태였기에 오늘이 날이구나 싶어 이 친구로 결정했다. (가격은 11만원)

기대했던 킨스즈메는 기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이었다. 여지껏 마셨던 사케 중 가장 맛있었다.
진희와 함께 같이 넋을 잃고 와... 이게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라고 동시에 얘기했고,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이렇게까지 맛있다고?” 라고 자동반사처럼 중얼거릴 정도로 훌륭한 맛이었다.

한 모금,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입이 즐거운 술이었다.
처음 딱 마셨을 때 파인애플, 사과스러운 향이 퍼진 뒤 입에 착 달라붙듯 산미가 올라와 “달지만 산뜻하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잠시 후 2차로 요구르트 같은 산미가 그라데이션처럼 2차로 올라와 “와!”하게 되는 그런 맛이었다. 더 열심히 적었어야 했는데 사케 경험이 짧아 이 정도로 밖에 표현 못하는 내 자신이 미워지는 맛.
당도가 꽤 있는 술이었지만 산미가 다채롭고(이 표현 싫어하는데 정말 다채로웠다) 똑 떨어지듯 단맛이 사라지는, 잔당감이 없는 스타일이어서 전혀 질리지 않았고 무한으로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병을 순식간에 비우고 진희에게 “서울에 남아있는 킨스즈메 다 내가 마시고 싶다” 같은 농담을 했다.(사실 진심이었다.)

마시고 2주 뒤 쯤, 사케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케타임 랭킹을 자주 참고한다고 하여 확인해봤는데, 킨스즈메가 6위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너 생각보다 유명한 친구였구나?😅 그리고 우리 입이 맛있는 걸 정확히 아는구나 싶어서 웃겼다.

훌륭한 맛의 킨스즈메 덕에 기분이 업 되어 소츄도 추가 주문했다. 세키토바의 여름 버전 세키토바 블루!
병과 라벨 색이 좀 바뀌었을 뿐인데 이렇게 청량할 일인가! 싶었고 ㅎㅎ

맛은 얼음물에 적당히 희석된 세키토바를 먹는 듯한 그런 맛이었는데ㅋㅋ 밍밍하다고 생각은 들지 않았고 맛있게 마셨다. 여름에 잘 어울리는 산뜻한 맛.

그리고 이미 취했지만... 객기를 부려 주문한 다음 술은

쌀누룩과 보리에 생강을 더해 만들었다는 소츄, 진저!
라벨이 기존 소츄와 다르고 힙해서 언젠가 마셔봐야지 생각했는데…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마셨지만 기대에 비해 내 취향은 아니었다. 생강 특유의 스파이시한 향이 강렬하게 퍼지는데 약간 화장품스러운? 느낌이 좀 튀었다.
약간 취한 상태였기에… 다음엔 얼음을 넣거나 탄산수를 섞어 다시 한 번 먹어보고 싶다. 라고 생각했다.

얼큰하게 취해 나가기 직전, 사장님께서 서비스로 주신 호오비덴 유즈!

호오비덴이 리큐르도 만든다고?! 신기해했는데 와 이 술도 정말 ㅋㅋㅋㅋ 웃음이 절로 나오는 맛이었다.
유자를 껍질째 얼굴 위에서 짜부시켜 그대로 마시는 것 같은, 온 얼굴로 마시게 되는 강렬한 맛이었다.
나 리큐르 좋아하네…? ㅋㅋㅋ
이제껏 마셨던 술을 순식간에 까먹게 만들고 환기시키는 맛이여서 집에 한 병 사두고 원기충전할 때(?)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케바 단단에서 보낸 시간은 빠른 시일 내에 재방문하고 싶을 정도도 즐거웠다😌 사장님의 응대도 유쾌했고 술 추천도 만족스러웠다.
10월부터 단품 메뉴도 새로 나온다고 하니, 다음엔 단품메뉴와 함께 사케 마시러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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